‘파리학과’ 전공의 학사, 석사, 박사, 교수의 차이점?
자기 전공분야에 매몰된 나머지 타 전공에 대한 이해는 물론 소통과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극단적인 폐해와 역기능을 파리학과 메타포에 비추어 설명해본다. 여러분이 대학의 파리학과를 졸업한 파리학사라고 가정해보자. 파리학사는 ‘파리개론’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파리 부위별 각론으로 나눠서 배우기 시작한다. ‘파리학 개론(槪論)’은 보통 파리전공과 관련해서 처음 오리엔테이션 성격을 띠는 일종의 입문 교과목이다. 보통 ‘~개론’은 학생들에게 감동적인 교과목인 경우는 드물다. 이제까지 개론 책을 읽고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눈물을 흘렸거나 지적 분개의식을 느낀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개론’은 ‘개’소리하는 ‘론’이라는 약자라는 설이 있다. 개론서는 저자의 지적 고뇌나 체험적 노하우, 지적 분개의식이나 자기 목소리가 담겨있지 않다. 개론서 저자들간에 서로가 서로의 책을 인용하면서 교묘한 편집기술의 결과로 탄생하는 책이 바로 개론서다. ‘파리학 개론’ 수업을 들은 파리학과 학생들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이제 ‘파리 앞다리론’ ‘파리 뒷다리론’ ‘파리 몸통론’ 등 ‘파리학 각론’을 배우고 졸업하기 이전에 파리를 분해․조립하고 파리가 있는 현장에 가서 인턴십 등 실습을 한 다음 파리학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졸업한다. 파리학과를 졸업하면 “이제 파리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 것 같다”라고 말한다. 사실 파리학과 학생들이 말하는 이제 모든 것을 알 것 같다는 말은 파리에 대해서 들은 적은 있으나 설명할 수 없는 상태다. 이런 점에서 파리학과 학생들은 파리에 대해서 잡다하게 들은 것은 많으나 설명할 수 없는 절름발이 지식인인 셈이다. 파리 부위별로 배웠던 ‘파리학 각론’이 ‘파리학 개론’으로 다시 통합되지 않는 부분분석과 분해 중심의 교육과정은 파리에 대해서 배웠지만 진정 파리를 알지 못하는 학생들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주범이다.
파리에 대해서 전문지식이 부족한 파리학사는 좀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파리학과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한다. 파리석사는 파리 전체를 연구하면 절대로 졸업할 수 없기 때문에 파리의 특정 부위, 예를 들면 ‘파리 뒷다리’를 전공한다. 파리 뒷다리를 전공하는 파리학과 대학원생은 파리 뒷다리를 몸통에서 분리, 실험실에서 2년간 연구한 다음 「파리 뒷다리 관절상태가 파리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나 「파리 뒷다리 움직임이 파리 몸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파리 석사학위를 받는다. “이제 무엇을 모르는지 알 것 같다”고 깨달으면 주어지는 학위가 바로 파리 석사학위다. 파리 뒷다리 전공자에게 절대로 파리 앞다리를 물어봐서는 안 된다. 파리 뒷다리 전공자는 파리 앞다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파리 뒷다리를 전공하는 교수님에게 자꾸 파리 앞 다리에 관한 질문을 하면 졸업이 안 될 수도 있다. 전문가는 ‘전문적으로 문외한인 사람’ 또는 ‘그것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파리 뒷 다리 전공의 교수님이나 석사학위 취득자에게 파리 앞다리는 또 다른 전공영역이다. 파리 앞 다리 전공자와 뒷다리 전공자간 파리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위해 자주 만나서 각자의 연구결과를 갖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전공영역별 연구대상은 물론 연구방법론이나 방법의 차이로 각기 다른 연구결과를 생산하기 때문에 다른 전공자들이 함께 논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전공별 최선을 다해서 연구하지만 결국 전공 이전의 전체, 예를 들면 파리에 대해서는 점점 알길이 없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파리 뒷다리를 전공한 석사의 더욱 심각한 문제점은 파리 뒷다리를 파리 몸통에서 떼어내서 독립적으로 연구한다는 점이다. 파리 뒷다리는 파리 몸통에 붙어있을 때 의미가 있다. 몸통에서 떨어진 파리 뒷다리는 이미 파리 뒷다리로서의 생명성을 상실한 죽은 다리다. 파리 뒷다리를 파리 몸통과 관계없이 분석하고 이해할 경우 파리 뒷다리를 알 길이 없다. 항간에 ‘석사’(碩師)의 ‘석’(碩)자가 돌 ‘석’(石)자라는 말도 있다. 석사학위를 받아도 자기 전공 이외에는 별로 아는 바가 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석사’(石士)는 그래서 ‘돌 머리’ 또는 ‘돌대가리’라는 설도 나돌고 있다.
파리석사는 파리에 관한 보다 세분화된 전공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파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한다. 파리학과 박사과정생은 파리 뒷다리를 통째로 전공해서는 절대로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없다. 이제 파리학과 박사과정생은 석사학위보다 더 세부적인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면 파리 박사학위 취득에 필요한 전공 부위는 ‘파리 뒷다리 발톱’이 될 수 있다. 파리 뒷다리를 전공한 석사과정은 파리 뒷다리 발톱을 더욱 전문적으로 깊이있게 공부하기 시작한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전에 파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생은 ‘전국추계 파리발톱 학술대회’에 나가서 그동안 연구한 「파리 뒷다리 발톱 성분이 파리 발톱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부논문을 발표한다. 보통 박사학위 논문 이전에 학술대회에 나가서 부논문을 발표하거나 전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야 박사학위 논문을 쓸 자격을 부여한다. 파리발톱 학술대회에서 파리발톱에 관한 다양한 논문을 발표하는 예비 박사과정 후보나 전문 학자들 간에도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공영역별로 사용하는 전문용어가 다르고 전문용어가 다르면 동일한 전공영역 내에서도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파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생은 이런 부논문을 더욱 발전시켜 「1년생 파리 뒷다리 발톱의 성장패턴이 파리 먹이 취득 방식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파리 박사학위는 “나만 모르는지 알았더니 남들도 다 모르는군”이라는 깨달음이 오면 주어지는 학위다. ‘박사’(博士)의 ‘박’’(博)자는 얇을 ‘박’(薄)자라는 설도 있다.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돌(石)을 계속 갈다보면 돌이 얇아져서 ‘박사’(薄士)가 된다는 설이 지금까지 나온 가장 유력한 설이다.
이제 파리학과 교수는 보다 세분화된 전공을 선택해야 교수사회로 입문할 수 있다. 파리를 통째로 전공한 파리학과 학사, 파리 뒷다리를 전공한 파리학 석사, 파리 뒷다리 발톱을 전공한 파이학 박사보다 더 세부전공 부위를 선택해야 한다. 교수가 전공하는 파리 부위는 ‘파리 뒷다리 발톱에 낀 때’다. 파리발톱에 낀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도 까만 때를 전공하는 교수, 누런 때를 전공하는 교수, 누르스름한 때를 전공하는 교수, 까무잡잡한 때를 전공하는 교수 등 발톱에 때의 색깔별로 파리 발톱 때와 관련된 학파가 다르다. 학파별로 다종다양한 파리 발톱의 때 관련 논문이 양상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누런 파리 발톱 때의 화학성분이 파리발톱 성장과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이 탄생되기도 한다. 파리 뒷다리 발톱에 낀 때의 역사, 예컨데 30년산 때나 21년산 때를 전공하는 교수, 18年산이나 15년산 또는 12년산 때를 전공하는 교수로 전공분야가 나뉜다. 30년산 파리 발톱의 때를 전공하는 교수는 12년산 파리 발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별로 없다. 오로지 30년산 파리 발톱에 낀 때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동일한 파리 뒷다리의 때를 전공하지만 전공영역이 달라서 파리 뒷다리의 때를 전공하는 교수들끼리도 사용하는 전공용어상의 차이로 인하여 커뮤니케이션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심각성은 자신이 연구하는 파리 발톱의 때인지 돼지 발톱의 때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파리 발톱의 때를 색깔이나 역사에 따라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기 때문에 나중에는 자신이 연구하는 때의 정체성에 대해서 모르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렇게 교수가 되면 “어차피 모르는 것, 끝까지 우겨야 되겠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제 파리학과 교수는 파리에 대한 쉬운 이야기를 전문적으로 논의하기 때문에 아주 어렵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교수에 대한 사회적 정의가 ‘쉬운 이야기를 어럽게 이야기하는 사람’이라고 떠도는 이유를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파리는 파리 전체를 이해한 다음 각론으로 들어가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나무를 보기 전에 숲을 먼저 보라는 말이 여기에도 통용된다. 파리의 특정부위가 파리 몸통 전체와 어떤 구조적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한 지식 없이 파리를 이해할 수 없다. 파리, 파리 뒷다리, 파리 뒷다리 발톱, 파리 뒷다리의 발톱에 낀 때와 같은 전공영역은 모두 파리라는 생물체의 일부분이다. 파리와 파리 생물체의 일부분 간에 구조적 관계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파리의 각 부위에 대한 분석적 이해는 파리 전체에 대한 이해를 왜곡할 수 있다. 전공의 세분화를 중시하던 시대에는 전문성의 깊이는 전문가가 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었다. 이러한 전공의 세분화는 급기야 더 이상 종합할 수 없는 상태로 분해되어버렸고 동일 전공 내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되고 세부 전공영역 간 높은 벽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 대학의 교육과정은 전공 간 벽을 넘어 동일 전공은 물론 타 전공 간에도 가로지르는 융합교과목이 생기는 추세로 급진전되고 있다. 미래 융합대학의 교육과정이 바뀌고 그 안에서 가르쳐야 될 교육내용이 기능-횡단적(cross-functional)으로 융합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융합대학에서 교수는 가르치는 내용뿐만 아니라 방법 측면에서도 과거의 교수방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융합 교수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한 사람의 교수가 자신의 전공영역뿐만 아니라 타 전공영역에 대한 전문성을 폭넓게 섭렵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볼 때 현실적으로 교수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융합 교수방법밖에 없다. 융합 교수방법의 핵심은 ‘개별적 지식’보다 지식과 지식 사이를 흐르는 ‘관계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다. 특정 분야의 지식은 그 지식이 탄생될 수밖에 없는 사회역사적 문제의식은 물론 다른 지식과의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탄생된다. 부분을 가르치기 이전에 부분이 구조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해당 지식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가르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세분화, 전문화된 지식은 파편화, 단절화되어 그 지식의 근원이 어디에서 유래된 것인지를 알기 어려울 정도로 전체에서 분리․독립되어 너무 멀게 격리되어 있다. 지식의 ‘분리’와 ‘격리’는 지식의 탄생 배경이자 적용대상인 현실과의 ‘거리’를 만드는 장본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문지식을 창조하면 창조할수록 그리고 그런 지식으로 해당 학문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해당 학문의 적용대상인 현실 설명력과 이해력은 떨어지고 있다. 학문적 세분화, 전문화로 인하여 지식의 본질과 가치는 희석되고 탈색되어 그 출처(出處)는 물론 용처(用處)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세분화되어가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 전공의 전공을 전공하다 보니 자신의 전공이 유래된 모학문(母學文)의 실체와 본질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사태와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지식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기존 지식이 또 다른 지식을 창조하는 기반과 원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기존 지식으로 설명하고 이해랄 수 없는 새로운 현상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기존 지식의 경계를 뛰어넘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은 기존 지식, 특히 전공별 구획화된 지식의 한계와 문제점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열어준다. 파편화, 단절화된 지식이전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기존 지식이 쌓아 놓은 높은 벽을 넘고 건널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멀리 떨어진 경계를 오고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필요하다. 그 징검다리 역할은 상상력에서 나온다. 복잡한 현상을 나누고 분할시켜 분석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전공영역의 경계를 넘나드는 상상력이 더욱 중요한 시점이다.
[출처] 지식상태학자 유영만 교수님
http://blog.naver.com/kec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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