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만원 세대
경제학자 우석훈과 비주류를 자칭하는 기자 출신 블로거 박권일이 함께 쓴 책 《88만 원 세대》에서 시작된 말이다. 88만 원 세대에서 88만 원은 우리나라 비정규직의 평균 임금인 119만 원에 20대의 평균 소득 비율 74퍼센트를 곱해서 산출한 금액이다. 결국 88만 원 세대란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의 평균 임금 소득을 통해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20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88만 원 세대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386세대는 선동열 학점이라는 0점대 학점을 받아도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취직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대학을 갓 졸업한 88만 원 세대는 사회생활의 첫발을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경쟁력 없는 대학교와 대학생도 88만 원 세대가 등장하는 데 한몫을 했다. 한국의 88만 원 세대는 일본의 ‘버블 세대’나 유럽의 ‘천 유로 세대’, 미국의 ‘빈털터리 세대’와 유사한 의미로 볼 수 있지만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한 한국 사회의 현실을 생각하면 이들이 피부로 느낄 비참함은 훨씬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88만원 세대 (대중문화사전, 2009)
[네이버 지식백과] 88만원 세대 (대중문화사전, 2009)
■ 오늘날 우리가 겪고있는 사회적 갈등은 꽤 심각한 수준이다. 고질적인 지역갈등, 이념갈등, 빈부갈등, 노사갈등 등은 이제 전통적(?)이고 요즘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대형마트와 전통시장, 프랜차이즈와 골목상권 등 온갖 갑을 갈등과 지난 대선과 연금문제로 발발한 세대갈등까지...우리 사회는 갈등의 백화점과도 같아 보인다. 정말 우리 민족의 유전자엔 이조시대의 당파성이 밈(meme)처럼 새겨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인종문제나 종교문제가 없는게 다행스럽다. 적어도 이 문제들 처럼 피를 부르진 않으니깐 말이다. 어쨋든 한국사회에 이렇게 다채로운 갈등구조가 국가의 존폐를 위협할 만큼 심각한 수준인데, 이러한 갈등구조의 피해를 온몸으로 겪고 있는 세대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20대, 즉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이다. 오늘날의 20대는 10대에는 치열한 입시전쟁에 시달렸고,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낭만은 커녕 곧 다가올 취업에 대한 공포로 스팩쌓기에 지치고, 졸업해서는 살벌한 취업경쟁에 성공한 소수를 제외한 90%이상은 알바나 비정규직의 늪에 빠지져 허우적 거린다. 우석훈 교수는 이러한 20대의 상황의 원인을 한국경제 시스템의 특유한 구조적 문제, 세대간의 갈등구조로 파악한다. 그들의 상황을좋은 시절에 태어나지 못한 불운 탓으로만 돌리기 보다는 구조적인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다.
■ 과거의 기성세대의 20대에는 상황이 휠씬 좋았었다. 그들은 일단 대학때 뺑뺑이 놀았어도 졸업만 하면 쉽게 좋고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우리경제가 성장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IMF를 계기로 우리 경제의 고성장구조는 끝이 나고, 아울러 세계경제의 구도도 과거와 달라진다. 즉 세계화,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는 무한경쟁의 파고에 우리도 휩쓸리게 되었다. 기업들은 더더욱 집중화되고, 정규직 고용을 줄이고 비정규직 고용을 늘렸으며 골목상권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약자, 즉 중소기업, 자영업자들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아울러 여기서 창출되는 일자리 또한 사라져 갔다.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자 한국의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는다. 진입장벽을 높혀 20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의 안전판으로 삼는 대기업노조들의 행태, 정규직을 채용하지 않으려는 기업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른바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의 시대를 우리는 IMF라는 것을 계기로 유래없이 급격하게 맞이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전세계적인 구조의 변화이다. 우리에게 좀 특별하게 갑작스레 왔을 뿐이지 우리만 이런 노동의 종말 시대를 맞이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문제가 심각하게 된 것은 한국사회의 특수성에 감안한 바가 크다. 그 원인은 압축성장에 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등의 선진국들은 오랜 산업화를 거치며 다양한 사회적 갈등들을 풀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이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조금씩 양보해 나가며 세대간의 갈등들을 풀어왔던 것이다. 유럽의 경우 20대를 위한 사회안전망들이 있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대학등록금과 대학의 국유화 및 평준화, 주거지원비, 지역사회의 일자리 알선 등 젊은 세대들이 사회에 안착하기 위한 배려들이 사회적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것들은 모두 기존세대의 세금으로 이루어진다. 즉 기존세대의 기득권의 일부를 그들에게 나누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유럽의 20대들은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처럼 88만원 세대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존세대. 즉 유신세대, 386세대 등은 기득권을 놓을 생각이 전혀 없다.
■ 기존세대들은 20대 문제를 개인이 해결해야할 경쟁력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본인의 노력이 부족해서 경쟁에서 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성공하는 20대는 노력의 댓가를 받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이 드러나는 사례가 반값등록금을 둔 논란이라고 본다. 기존세대들은 대학생들이 투쟁의 주체가 된 반값등록금 문제를 곱게 바라보지 않는다. 과도한 예산이 소요되는 복지 포퓰리즘의 문제로 바라본다. 이는 기존세대들이 기득권을 놓으려는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 예산이 바로 그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교수는 이를 사회적 구조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요구하며 기존세대의 양보를 요구한다. 이는 단순한 배려차원의 양보가 아닌 우리나라의 경제적 미래를 진단한 경제적 판단에서 비롯된다. 지금처럼 20대의 노동력을 기존세대가 착취하는 구조의 경제가 영속적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세대간의 적절한 기회의 이전을 통해 향후세대가 정상적으로 경제주체로서 활동을 해야 우리의 경제구조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견해이다. 우리도 유럽을 비롯한 선진국 처럼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런 시스템을 갖추어야 선진국 반열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 과연 우리의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고 불리울 만큼 절망적인가? 이미 30대가 훌쩍 넘어 40대를 바라보고 있는 나로서는 잘 실감이 나지 않았다. 현재의 20대의 삶이 실제로 어떤지 접할 기회는 거의 없고, 막연히 나의 20대 때보다는 좀더 팍팍하겠거니 생각하는 정도의 인식이 있을 뿐이었다. 나의 세대에도 입시경쟁은 치열했으며, 취업도 역시 어려웠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 지금 30대들이 과거에 지나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나 역시 20대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바라보는 시각이 강했다. 그러나 나 역시 기득권을 점유한 기존세대의 시각에서 그들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세대는 우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X세대로 불리운다. IMF이후 구조변화의 피해를 받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기회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이른바 좋은시절의 막차세대다. 나름 운이 좋았던 세대라고 할까. 그러나, 유럽의 20대나 일본의 20대와의 비교, 한국 사회에서의 세대간 착취구조에 대한 분석을 바라보며 시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세대간의 갈등구조는 우리가 선진국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인식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 처럼 이 문제가 쉽게 풀리진 않을 것이다. 기존세대들도 살기에 팍팍한 이 험한 시대에 차후세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기존세대의 문제다. 그들의 자식들이 이런 상황에 처할 것이고, 그 아이들을 경쟁에서 이기게 하기위해 기존세대는 엄청난 사교육비에 시달린다. 아울러, 20대 문제가 심각할 수록 기존세대는 그들을 부양해야 할 시간과 금액이 늘어날 것이고 기존세대의 노후문제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세대는 더욱 기득권을 지키려 할 것이다. 이것이 나를 비롯한 X세대들, 그리고 386세대들이 취했던 스탠스다. 정말 모순의 악순환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거대한 사회적 합의를 과연 누가, 혹은 어떤 세력이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솔직히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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